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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태권도" 셔츠를 보다.

네달란드 문화/생활

by 더치만 2022. 6. 1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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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데, 앞에서 자전거를 타시던 중년의 남자분이 입고 계시는 허름한 셔츠 뒤에 "태권도"가 쓰여 있었다.  글자체가 누군가 직접 쓴 것 같이 엉성해서 멀리 서는 "태권도"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누군가가 쓴 것 같은 이 엉성한 글씨체가 나를 더 반갑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도장에서

5살 때인가 엄마 손에 끌려서 태권도장에 잠시 다닌 적이 있었다. 분명히 옆 집에 살던 동갑 친구가 가는 것을 보고 데려갔을 것이다. 음악학원, 미술학원, 유치원 때도 똑같았다. 아무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는데, 두 가지가 뇌리에 박힌 것이 있다.

 

도복의 엄숙함.

예전에 태권도 도복이 유도 도복 같이 되어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흘러내리고 벗겨지고 많이 불편했었다. 그 도복은 처음 받던 날이 생각나는데, 도복 윗 도복을 펼쳐 놓고, 도장명을 써 넣으셨다. 어떻게 잘 새겨서 간직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생각나는 것은 도복 윗도리를 펴고 옆에 붓과 먹, 벼루를 가져다, 관장님이 직접 붓으로 내려 적으셨다는 것이다. 이게 어린 나에게는 뇌리에 박힐 정도로 굉장히 엄숙했다. 태권도장을 오래 다니지는 못했지만, 도복은 오래 간직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기합.

여기서 기합은 벌 받는 것을 말한다. 대련할 때 투지를 살리기 위해 소리내는 그런 기합이 아니다. 도장에서 입관하면 처음 관장님이 이야기하신 내용은 싸우지 말라였다. 태권도는 싸우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누가 싸웠다고 하면, 혼난다. 그런 말씀이었는데 농담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왜 그시간에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보통 꼬마들과 함께 이어야 했는데, 그 순간 내 기억에는 큰 형들과 같이 있었다. 혼자 꼬꼬마였다. 

기억이 남은 그날, 형들이 일렬로 좌우 정렬해서 모두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누군가 학교인지, 밖에서 싸움을 한 것이 걸린 것이다. 어떻게 아셨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날 수업은 없었고, 모두 엎드려뻗쳤다. 태권도장 바닥은 쿠션이 있어서 딱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린 학생들 나이에 머리를 시간 내내 박고 있기에는 충분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 장면이 기억나는 이유는 내 수업도 아니고 도장에 나왔다간 얼떨결에 기합을 받는데, 사범 보조 형, 아니 아저씨가 와서 너는 꼬꼬마니 열외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열외?" 뭔지 몰라 갸웃 등 하고 있자니 그냥 앉자 있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의 눈앞의 풍경이 주황색 쿠션 바닥에서 쏟아 오른 엉덩이로 바뀌었다. 한 명 싸우고 왔다고 (한 명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전부 얼차려라니. 

이 태권도장을 얼마나 오래 다녔는지 기억이 없다. 다음해에 유치원을 다닌 것이 분명하니 약 6개월 남짓 다니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도장과 유치원은 가까운 위치에 있었는데, 태권도장에는 통학 버스가 없었다. 유치원은 있었다. 도장과 유치원 모두 내가 혼자 다니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가끔 새로오신 한국 가족 분들이 게시판에 태권도장 문의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늘 자전거 타다 본 "태권도" 글자가 옛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태권도 배웠냐고 물어나 볼 걸.

 

태권도 셔츠를 입고 자전거 타는 남자
태권도 셔츠를 입고 자전거 타는 네덜란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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